2007년 07월 10일
[독서일기]2004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주에 한번정도 기록하면 어떨까, 했더 춘삼월의 다짐이 무색하게 어느덧 칠월이다. 사실 학기중에 무던히 바빴다는 것도 하나의 핑계거리이지만, 어쨌든 게을렀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 틈틈히 책은 읽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뭐가 좋았는지 아니었는지 희미한 기억만 나고;; ㅡ놀랍게도 이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던 책은 엄청난 깊이로 각인되었다;; 어쨌든 요즘은 조금 여유가 생겨서 다시 책을 읽고 다이어리에 조금씩 쪽감상을 적어놓고 있다. 사실 닥터 하우스씨에게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책읽는 시간이 오분의 일정도로 줄었지만;;

그중에 오늘 기록할 쪽 감상은 <2004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표지에 비스듬히 서있는 김영하의 모습이 반가워 빌려온 책이지만 그것 말고도 반가운 소설이 많았다. 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항상 이렇게 뜻하지 않는 반가운 수확이 있어서 기쁘다. 이러한 기쁨은 꽤 지루하다고 느끼는 몇 작품이 있음에도ㅡ이는 전적으로 내 취향일 뿐이다ㅡ그것들을 제치고 또 다시 다른 문학상 작품집을 찾게 한다.

1. 김영하, <보물선>
2004년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김영하의 작품은 역시나 그답다. "~답다"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임에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요근래 김영하의 소설을 퍽 자주 읽게 되어, 그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는데ㅡ작품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왜냐하면 나는 그의 팬이지 말이다ㅡ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느낌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아직 '김영하답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므로, I Need Time.

2. 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이 책에서는 사실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가 맘에 쏙 들어왔다. 요상하게 따뜻하다, 사실은 퍽 답답했던 한 시절에 대한 무덤덤한 이야기인데도. 과거의 한 시점을 떠올리는 건 좀 기묘한 경험이다. 특히 그 시점이 삶의 진창이나 구멍중의 하나라면 더욱 더. 그걸 떠올리고 있자면 기막히게 배시시 웃음이 난다. 내가 가진 발자국 중 하나이기에 그 진창 밑구멍의 냄새가 어땠는지까지 아직도 이렇게 생생히 기억나는데도 그런 것이다.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것이 명백한데도 그때가 따뜻하게 느껴지다 못해 가끔은 그립기도 한걸보면 정녕 산다는건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ㅡ아니 나는ㅡ박작가님와 더불어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알듯 말듯하게 배시시 웃으면서.

3.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윤대녕이나, 김연수 등의 반가운 이름이 많다.  그러나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정리가 잘 되지 않으므로, 기록은 여기까지.



* 그 한 달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시기였다. 계절이 봄이란 이유로 히터를 전혀 가동하지 않았으므로, 실제 방 안의 체감온도는 몹시도 추운 편이었다. 그리고 나는 늘 혼자였다. 그 좁고, 외롭고, 정숙하고, 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ㅡ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ㅡ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ㅡ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아무튼 말이다.


* 인간은 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 이하동문이다.

라는 낙서를 화장실 벽에서 발견한 것은 마아도 추석 무렵이었을 것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 모퉁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고, 이미 희미해진ㅡ아주 오래 전의 낙서였다. '인간은 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는 검은 볼펜으로, '이하동문이다'는 그 후 누군가가 푸른색 사인펜으로 답글을 단 것이다. 나 역시

이하 동문이다

낙서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꽤나 많은 사색을 한 듯했다. 또 다른 모퉁이에는 '인생을 사는 것이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힘들다'란 글귀가 같은 필체, 여전한 크기로 적혀 있었으며 역시나 거의 지워질 정도의 오래된 낙서였다.

그럴 수도.

라고 나는 생각했다.


* 나는 불현듯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내가 잠든 후, 나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베란다의 창을 열자 15층의 넓고 광활한 밤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저 빛들은 무엇일까. 두둥실, 마치 기포와 같이 잔득 무리를 지어 떠 있는 저 빛들은ㅡ어쩔 수 없이 이 세계를 빠져나가야 했던 죽은 이들의 동정 어린 시선일까. 아니면 이 가구(家具)와같은 삶을 잠시나마 이탈한, 살아 있는우리들의 지치고 고단한 영혼들일까. 담배를 피우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 밀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이다. 또 혹시나, 우리가 소유한 이 모든 것들이 실은 '386 DX-Ⅱ'와 같은 것들은 아닐까 걱정이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이 모든 것들은 나나 당신에게 실로 소중한 재산이고, 또 우리는 누구나 그것을 모으고 지키기 위해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 혹시 실패를 겪거나 / 쓰러지더라도 /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 그 모두가 돌아와 /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 웅크린 채라 하더라도 말이다.

 

by 에스메랄다 | 2007/07/10 01:24 | 읽 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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