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탁심, 그 시리아 여자의 눈  2014영국터키



이스티크랄 거리는 언제나 활기찼다. 이스탄불에서 머물던 7일동안 종종 반정부 시위가 열렸고, 언제나 경찰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했다. 싱싱하고 힘이 넘쳤다. 쉬고있는 경찰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대면 앳된 얼굴로 수줍게 웃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연신 브이자를 그려주기도 했다. J와 나는 탁심의 뒷골목에 방을 구했다. 낮에는 이스탄불의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다가 밤이되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라이브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물담배를 피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팔년 전의 이스탄불에서는 '탁심은 위험한 곳' 이라는 말을 수십번은 들었던 것같다. 그러나 2014년의 우리에겐 탁심이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장소였다.






어떤 날의 탁심은 많이 아팠다. 시리아 사태로 터키의 치안은 예전같지 않았다. 열걸음마다 난민들이 눈에 띄었다. 대체로 가족단위었다. 물론 그들이 타인들을 딱히 위협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거리에는 특이한 위화감이 있었다. 상인들은 그들이 가게앞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을 싫어했다. 되도록 가게에서 멀리 떨어져주기를 원했고, 손님들에게 접근하지 않도록 호되게 주의를 주었다. 가족을 먹여살리고자 하는 가장들은 '시리아'라는 한마디를 뱉으며 손을 내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럴 의지조차 사라진 모습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수차례의 거절을 통해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길에 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길에 없었다. 가로등, 쓰레기통, 벽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라이브카페에 앉아있었다. 핑거스타일로 기타를 연주하던 남자는 꽤 노래를 잘했다. 사람들은 흥에 겨웠고, 취했고,춤을 췄다. 우리도 야외테이블에 앉아 영상을 녹화하고, 맥주를 마시고, 노래하는 남자에게 팁을 줬다. 어김없이 그 가게 옆에도 한 가족이 있었다. 실의에 빠진 젊은 부부, 그리고 아직은 세상이 신기한, 눈만 마주치면 방긋거리는 두 아이들. 나는 그 시리아 여자의 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이 어린 눈빛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당신들 눈앞에 나타나 흥청거리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이유없이 사과하고 싶어졌다. 그 여자에게 내밀고 싶었던 5리라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노래하는 남자에게 주던 팁은 너무나 쉬웠는데.

눈치빠른 가게 주인은 우리의 불편함을 이내 알아채고 그들을 다른 자리로 몰아냈다. 아니, 우리는 괜찮다고, 나서서 말리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어떡하지,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나는 그들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급해졌다. J도 마찬가지였다. 얼른 지갑. 한마디로도 통하던 순간이었다.

한끼 식사도 채 못되는 지폐 한장에 그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고개를 숙이고 싶은건 우리였다. 그들의 엄청난 불행앞에 어떠한 낙관적인 말도 감히 할 수 없는 우리가, 그날은 그렇게 하찮고 작았다.  

 





+내가 그 여자의 손을 잡고싶던 순간에 당신이 그들을 쫓아가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언제나 행동해 주는 당신. 참 고마운 사람.

+물론 탁심광장은 여전히 위험한 곳. 명동에 소매치기가 성행하고 광화문 광장이 종종 위험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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